도쿄여행 / 긴자 철길 밑 감성적인 이자카야 <Hakata jidori fukuei>
도쿄여행 3일차.
나는 감기에 걸려 여행 일정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냥 호텔에 누워있자니 나를 마중나온다고 일본까지 온 신랑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우린 저녁도 먹을 겸 호텔 근처 이자까야에 가보기로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어딜 먼저 알아보거나 예약하지 않은 채 구글 평점 4점 이상인 인근 술집을 즉흥적으로 찾아갔다.
우리가 찾아간 하카타 지도리 푸쿠에이는 점심 때 장어 덮밥을 먹은 곳과 같이 철길 밑에 자리잡고 있었다.
긴자, 하면 으레 여의도처럼 높은 증권가 건물들을 떠오르는데,
긴자 한가운데에 이렇게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철길 밑 음식점이 모여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Hakata jidori fukuei>
우리는 평일 저녁에 이자카야를 방문했다. 다행히 웨이팅은 없었다. 직장인 퇴근시간과 겹치지 않아서일까.
간판을 보고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니 여자 종업원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우리는 가게 안쪽 다다미방으로 안내받았다.
이자카야가 좁은 줄 알았는데 상당히 넓더라. 안쪽 공간마다 방이 마련되어있었다.
이자카야에 온 이상 맛있어보이는 안주는 다 주문해봐야지. 나는 일본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계속 먹고싶어했던 모츠나베를 주문하기로 했다. 여기에 신랑은 명란구이와 닭구이도 추가로 주문했다.
사실 닭구이는 딱히 생각이 없었으나, 구글맵 앱에서 어떤 한국인이 닭구이를 강력 추천하기에 시험삼아 주문해봤다.
술은 하이볼과 시원한 일본주를 골랐다. 나는 술의 맛, 종류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서 그냥 맛있는 술을 추천받았다.
메뉴판이 모두 일본어로 되어있어 주문할 때 종업원과 영어와 짧은 일본어를 섞어 소통해야 했지만, 한편으론 여행객보다 현지인이 많이 찾는 이자카야인 듯해 더 기대치가 높아졌다.
가장 먼저 술이 제공됐다. 내가 주문한 키위가 들어있는 하이볼은 이 이자카야에서 이번 시즌에 밀고 있는 메뉴인 듯 하다. 마셔보니 알콜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술이라기보단 시원한 과일음료같았다.
신랑이 주문한 시원한 일본 술은 얼음과 함께 제공됐다. 내가 마셔보진 않았지만 신랑은 나쁘지 않다고 했다. 기대한 맛은 아니지만 우연히 접한 맛 치고는 입에 잘 맞는단다.
함께 나온 오이지같은 메뉴는 아주 조금 새콤한 일반 안주로, 술과 함께 즐기기 괜찮았다.
안주 중에선 모츠나베가 가장 먼저 나왔다. 버너 위에 놓인 얕은 팟에 고기, 파, 양파, 양배추 등이 담겨있다.
버너에 불을 켜고 모츠나베를 끓이자 고소한 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 곳을 찾은 이유 중 하나는 리뷰 중 “여기가 모츠나베 맛집”이라는 후기를 봤기 때문이다.
그 리뷰를 기억하며 엄청난 기대감을 갖고 모츠나베를 맛봤다.
일단 아주 고소하고 국물 맛이 깊었다. 고기도 탱글탱글하고, 간도 적당했다. 뭐 하나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이 없었다.
리뷰처럼 여기에 우동사리를 추가해 먹어도 정말 맛있을 것 같았다.
다만 팔팔 끓이다보니 국물이 금방 쫄아붙었는데, 육수를 추가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해서(300엔이었나..) 우리는 굳이 추가하진 않았다.
원래 육수 추가는 무료가 국룰 아닌가? 하긴, 여긴 우리나라가 아니라 ‘국룰’을 적용할 순 없다만.
명란구이는 아주 뜨거운 판에 지글지글 끓여지는 상태 그대로 제공됐다. 테이블에 판을 놓자마자 여기저기 사방팔방에 명란구이 기름이 튀었다.
역시나 명란답게 맛은 기가막혔다. 다만 아주아주 짰다. 우리가 한국에서 즐겨먹는 명란구이보다 훨씬 짰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닭구이는 다섯 조각 정도가 따뜻한 상태로 제공됐다. 곁들여먹는 소금, 양념과 함께.
닭구이가 나왔을 때 우리는 모츠나베와 명란구이로 이미 배를 채운 상태였다.
그래서 이 맛있는 닭구이를 눈 앞에 두고도 다 먹어치우지 못했다.
다른 안주들에 비해 간도 약하고 아주 입맛에 잘 맞는데, 식감까지 완벽한데,
단지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이 맛있는 안주를 못 먹는다니..
속이 쓰렸지만 포장해올 수도 없는 메뉴라 그냥 맛을 봤다는 정도로 위안을 삼았다.
성인 둘이 술에 안주 세 개를 주문해 배불리 먹고 낸 금액은 7,000엔 정도.
한국 돈으로는 6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국 이자카야에 비해 아주 특별한 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분위기도 좋고 맛도 괜찮고 직원도 친절했던 걸 고려하면 비싼 금액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앉아있던 좌석 옆 쪽에는 한국인, 일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문을 닫으면 딱히 대화도 들리지 않고 서로 보이지 않아서 사생활도 보장되는 듯 했다.
긴자에 또 갈 일이 있다면, 함께 간 가족들, 친구들 등과 함께 한 번 더 방문할 예정이다.
그 땐 더 다양한 술과 안주를 주문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