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 / 가이세키 전문점 wankyu(碗宮), 런치 우동이 맛있는 곳
아침 일찍 시바공원에 들러 도쿄타워와 벚꽃을 배경으로 꽃놀이도 즐기고 사진도 찍은 우리.
문득 배가 고파져 근처 구글 평점 높은 맛집에 가보기로 했다.
일본에 왔는데 가이세키 요리 한 번은 먹고 싶었던 우리는, 구글맵을 이용해 시바공원 근처 가이세키 전문점을 찾아갔다.
그런데 골목길을 헤매며 碗宮(완규)라는 이름의 가이세키 음식점에 도착했더니, 주인이 안타까워하며 점심엔 우동이나 소바만 제공한다고 했다.
우리보다 주인 분이 더 아쉬워했다. 점심에 가이세키를 못 팔아서 미안해, 하는 말투와 표정.
사실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우린 이미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여서 다른 가이세키 음식점에 찾아가기엔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그냥 여기서 점심 우동으로 배를 채워보기로 했다.
예약 없이 찾아왔는데도 대기는 없었다. 가게 안 쪽도 조용했다. 제법 지위가 높아보이는 직장인 두 명이 커튼 안 쪽에서 조용하게 식사하고 있었을 뿐.
여행객 없는 현지 가이세키 맛집이라니, 맛이 기대됐다.
포스팅 전에 다른 분들은 여기 음식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보려고 포스팅을 찾아봤는데 관련 포스팅이 하나도 없더라.
내 포스팅이 첫 한국어 작성 후기려나.
wankyu(碗宮)
점심에 판매하는 우동 세트
우리는 안쪽 다다미 같은 좌식 공간에 앉았다. 문을 열면 오픈 주방에서 조리하는 모습이 다 보인다.
일본 식당이 으레 그렇듯 여기도 굉장히 깨끗하고 청결했다. 심지어 화장실조차 매우 깨끗하다. 서비스도 나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 따뜻한 녹차가 제공됐고 이어 유부로 감싼 초밥이 나왔다. 일반 유부초밥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게, 안에 밥 뿐 아니라 초생강, 야채 등 여러가지 재료들이 들어있다.
일반 유부초밥보다 간이 훨씬 세고 달아서 내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신랑이 자기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며 초밥을 내 것까지 다 먹었다.
관자에 새우까지, 튀김 치고 실한 구성
유부 밥에 이어 우동과 튀김이 각기 다른 그릇에 제공됐다. 우동은 우동하면 떠오르는 딱 그 비쥬얼인데, 튀김은 색다르다.
일단 튀김 덩어리의 크기가 무척 크고 안에 조개, 새우 등 싱싱하고 큰 해산물이 무척 많이 들어있다.
우리는 우동과 튀김이 별도의 그릇에 담겨있는 걸 보고 우동을 메인처럼, 튀김을 반찬처럼 먹기 시작했다. 일반 일본 음식점에 가면 보통 우동은 우동대로, 튀김은 튀김대로 따로 먹으니까.
그런데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여자 사장님이 부리나케 자리로 달려와 ‘제대로 먹는 법’을 가르쳐줬다. 따로 먹는 게 아니라, 커다란 튀김덩이를 우동 속에 푹 담가 먹어야 한단다.
사장님이 알려준 대로 튀김덩어리를 우동에 넣자 우동에서 쉬이이- 하는 소리가 났다. 바삭바삭한 튀김옷이 우동 국물에 사르르 녹아드는 소리.
그러면서 맑던 우동국물에도 기름이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눅눅하거나 젖은 튀김을 좋아하지만 신랑은 반대여서 튀김은 무조건 바삭거려야 한다는 주의다.
그래서 튀김을 우동에 넣는 순간 나는 신랑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신랑은 우동국물에 넣은 튀김 덩어리를 우동과 함께 맛보더니 의외로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튀김이 바삭거리진 않지만 안에 워낙 맛있는 해산물이 듬뿍 들어있어 그 자체로 맛있단다!
그 얘길 듣고 나도 튀김을 먹어봤다. 신랑 말대로 튀김 덩어리 안에 아주 큰 덩이의 관자 세 개, 새우 두 세 개가 들어있어, 눅눅한 튀김을 먹는 게 아니라 싱싱한 해산물을 우동 국물에 적셔 먹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국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초밥, 우동, 튀김을 다 먹어치웠다.
우리가 먹은 우동세트는 한 사람당 2,000엔 정도. 엔저 환율을 고려하더라도 18,000원 정도를 낸 셈이니 가격은 제법 세다.
게다가 양도 많지 않다. 우동 한 그릇은 서너시간만 지나면 배가 훅 꺼지는 가벼운 음식이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고 여긴 건, 함께 넣어먹는 튀김의 재료가 워낙 신선하고 실해서다.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튀김을 먹어봤어도 이렇게 큰 관자가 들어있는 관자 튀김은 처음 먹어본다.
그리고 우동에 넣어먹는 튀김이란 신선한 컨셉도 나쁘지 않았다.
이 곳을 방문한 날은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남은 지폐와 동전을 떨어내기 위해 카운터 앞에서 동전을 마구 세봤는데 아무래도 동전 몇백엔이 모자란 것 같았다.
그 때 터프한 여자 사장님이 등장해 그냥 있는 동전만 내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번거롭게 카드를 쓸 필요 없이 남은 현금을 다 떨어낼 수 있었다.
터프한 사장님과 조용한 분위기가 있는 가이세키 전문점 wankyu(碗宮).
아직 한국 여행자들에게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지만, 우동과 튀김을 좋아하는 분이나 젖은 튀김과 우동 국물의 조합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찾아가보셔도 좋겠다.